조선이 세워진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서평] <정도전과 그의 시대> 조선건국을 통해 배우는 경제 민주화
숱한 화제를 불러오며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정도전>이 얼마 전 종영했다. 우리는 킹 메이커로서의 정도전이 아닌 민본을 실현하려 했던 이상주의 정치가 정도전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 고려 말 부패했던 시대상황 속에 새로운 이상국가 조선을 꿈꿨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많은 국민이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것도 어쩌면 당시 고려 말의 상황과 우리가 사는 현 시대가 겹쳐 보여서인지 모른다.
당시 고려사회는 권문세족이 대부분의 농장을 독차지 하여 지역 자영농이 모두 몰락한 상황이었다.
"당시 권귀와 환관들이 모두 사전을 받아 많은 경우 2000~3000결에 이르렀는데, 각기 좋은 땅을 차지하고도 모든 부역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 정도전과 그의 시대, p21
권문세족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경제권력까지 독점했지만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아 대부분의 백성과 국가가 가난한 상황이었다. 소수가 모든 정치, 경제 권력을 독점하여 대부분의 자영농이 몰락했던 당시 상황은 지금의 우리 사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계화 경제는 점점 경쟁력이 있는 소수 기업에게 부가 몰리는 체제이다.
소비자가 그것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한 우리는 점차 그 부가 가진 영향력에 지배를 받는다. 국내의 비정규직 문제와 자영업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경제환경이 그 일면이다. 심지어 경제인 출신 대통령의 4대강과 같은 명분 없는 국책사업도 부의 숨은 영향력이 정치에 까지 손길을 뻗친 예이다. 이에 대항하는 합리적 세력은 늘 존재하지만 기득권은 권력과 언론을 장악해 국론을 자기들 뜻대로 이끌어가기 일쑤다.
고려 역시 권문세족의 영향력은 개혁을 추진하려는 세력들에게넘기 힘든 큰 벽이었다. 고려의 충선왕, 신돈, 공민왕도 모두 개혁을 추진했지만 권문세족의 저항에 실패했다. 정도전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등장한 혁명 정치가였다. 당시 고려의 가장 큰 폐단은 토지문제였고 이 핵심을 정도전은 잘 짚어내고 있었다.
그는 귀양살이를 통해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피부로 느꼈고 토지제도를 완전 갈아 엎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고려를 전복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 부분이 그의 지기였던 정몽주, 스승 이색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정몽주와 이색은 기존의 토지제도를 개선하는 차원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정도전은 더 급진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성계를 만나 날개를 단 그는 조준과 함께 과전법을 추진하여 기존 토지문서를 다 불살랐다. 권문세족은 경제적 기반을 잃었고 이성계와 정도전은 탄력을 받아 조선을 건국했다.
만약 고려가 토지제도 문제를 자정(自淨)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고 결국 시대적 필요에 따라 조선이 건국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소수 갑과 다수의 을로 대변되는 현대사회는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자기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갑과 그렇지 못한 을의 차이는 고려 말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양극화의 갈등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혼란과 불행은 가중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민주사회에 살고 있다. 민주사회는 소수의 목소리라도 사회 다수에게 외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다. 부의 양극화로 고통 받고 있다면 그 목소리가 사회 전반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감의 사회가 바로 민주사회다.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하자. 그리고 발전시키자. 우리 먼저가 고통 받고 있는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자. 그리고 함께 연대하자. 정도전이 꿈꾸었던 진정한 민본의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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